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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1-03-17   /   Hit. 2375

기사입력 2021-03-17 07:12

 

[베이비박스 심층리포트 ①] 보호 원칙은 원가정→입양→위탁·그룹홈→시설 순이건만

[김지영 기자]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언덕길 꼭대기에 베이비박스가 있다. 어렵게 베이비박스 문을 여는 친생부모들은 아이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찾아온다.
ⓒ 김지영


 
지난 1월 1일 오전 3시, 새해 첫날이 밝기도 전이었다. 기온은 영하 11도. 바깥은 차갑고 날카로운 새벽 공기가 살갗을 찌를 시간이었다. 베이비룸 센서벨이 울렸다. 누군가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다는 신호다. 매뉴얼대로 밤샘 근무를 서는 야간 당직자 중 한 명이 서둘러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른 근무자는 밖으로 뛰어나가 아이를 두고 돌아서는 생모에게 다가갔다.     

십 년 넘게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면서 돌아서는 생부모를 상담 테이블에 앉히는 순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11년 23%에 불과했던 상담률이 작년에는 98%였다. 덩달아 오른 건 36%에 달하는 가정 복귀율이었다.

사람들은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들 모두가 영영 부모와 헤어지는 줄 알지만 죽을 만큼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는 경우가 많다. 상담을 통해 그 상황이 모면되는 시간을 벌어주고 아이를 맡아주면 부모는 다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모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새해 첫날 첫 번째로 베이비박스 문을 연 당사자는 젊은 미혼모였다. 아이에게 딸려 온 편지가 있었지만 자리에 앉자 눈물로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준비되지 않은 출산이었다. 당장에 묵을 공간도 없었다. 그래도 남자는 옆에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너무 젊었고 가진 게 너무 없었다. 양쪽 집안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딱 한 달만 아이를 맡아달라 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누일 수 있는 방을 구해 데려가겠다고 했다.
 
준비된 출산은 아니었지만 출산 후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만은 지켜내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아이의 부모는 한 달 뒤 오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 한 칸짜리 작은 방이지만 이제 미혼 딱지를 뗀 젊은 부부가 아이를 위한 세상을 다시 살기 시작했다. 2020년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이가 137명이었고, 그 중 부모 품으로 다시 돌아간 아이는 27명이었다. 이럴 때 베이비박스는 위기가정의 일시 보호소다.

같은 날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두 번째 아이가 들어왔다. 신생아였다. 삼십대 엄마는 기혼이었다. 폭력 남편을 견딜 수 없어 별거 중 우연히 만난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였다. 당장 출생신고부터 문제였다. 정신이 온전치 못할 정도로 산후우울증도 심했고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게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도저히 아이를 지켜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절박함의 끝에 베이비박스가 떠올랐다. 아이에 대한 모든 걸 포기해야 아이가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남겨 두고 엄마는 완전히 떠났다. 홀로 남은 아이는 법적 용어로 유기아동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야 해서 남겨진 아이였다. 생명은 지켰지만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이 아이의 보호는 이제 국가의 몫이 되었다.

베이비박스가 처음 문을 열었던 2010년 무렵에는 미혼모의 아이가 큰 비중을 차지했었지만 갈수록 기혼자와 외도로 인한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둘의 합계가 작년에는 32%까지 올랐다. 생모의 연령대도 10대(2020년 10%)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20대(2020년 50%)와 30대(2020년 32%)가 많아지고 있다. 절박함의 끝에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들의 양태도 시대를 반영한다. 
 
우리나라 아동보호 체계의 후진성
 

 생모가 남긴 편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까지는 모르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첨 아이를 버리는 비정한 사람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마음을 꼭꼭 눌러담은 편지다. 아이에게 유일한 낳은 엄마의 흔적이다.
ⓒ 김지영


 
지난 10년 동안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던 미혼모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아지지만, 같은 베이비박스로 와서 사회의 무관심 속에 무작정 시설로만 가야 했던 안타까운 처지의 아이들이 있었다. 유감스럽게 이 아이들 모두 새로운 부모의 품에서 오로지 저에게로 향한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러지 못한 이유는 어처구니없게 우리 사회 유기아동 보호 최후의 보루인 입양법과 유기아동보호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말하자면 유기아동보호를 위한 법률과 공적 장치가 가정보호라는 국가정책과는 반대로 유기아동을 마구 시설로만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11월 공개된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우리나라 아동보호 체계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헤이그 협약은 행복하고, 애정 있고,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의 원가정 최우선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아동보호 선진국들은 이 원칙을 따른다. 헤이그협약 비준 전 서명국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가정 보호 최우선 원칙에 따른 보호아동의 보호 원칙은 원가정→입양→위탁/그룹홈→시설 순으로의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였다. 이를 감사원에서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했다. 현행입양특례법의 가장 큰 피해자가 그 수치의 대다수였다.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거나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아이들이 언론을 장식하는 동안에도 서울 관악구 난곡동 가파른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 베이비박스 안에 포기된 아이들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이들 옆에는 여지없이 손으로 쓴  편지가 놓여 있었고, 입양법에서 강제하는 무조건적인 출생신고를 도저히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사정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 말하는 출생은 미혼, 근친, 외도, 성폭행 등 각각 저마다의 사연들로 다양했다. 사연이 무엇이든 살아난 삶은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완전하게 부모로부터 양육과 친권이 포기된 아이들에 대한 가장 최선의 보호 방식은 가정 보호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권리이자 국가적 책무다.  
 
하지만 감사원 보고서는 증언하고 있었다. 가정보호 비중이 감소하는 등 시설 중심 보호 체계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가정 보호를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 실태를 분석한 결과,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929명(96.6%)이 임시 보호되다가 아동양육시설 등 시설로 보호조치 되었고, 임시 보호 이후 가정 보호로 조치된 아동은 33명(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이 가장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할 공적 체계 안에서, 공적으로 명시된 가정 보호가 아닌 시설로 보호조치 되었고 그 아이들 숫자가 5년 동안 자그마치 929명이라는 의미였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장차 백 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부모와 가족들이 주는 사랑 안에서 자라지 못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시설 속에서 삶을 시작했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5년간 962명 중 929명(96.6%) 시설로... 국가는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을 국가가 온전하게 보호하고 적절하게 보호조치 하고 있지 못한 사실을 2019년 감사원에서 확인했다. 그 뒤로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속절없이 시설로 가서 제 평생의 삶을 시작한다.
ⓒ 김지영


 
국가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으며 새로운 엄마 아빠의 품으로 갔어야 할 929명의 아이들이 공적 체계와 국가정책의 결함으로 시설로 가야 했는데 2019년과 2020년을 지나 2021년이 되도록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다. 2019년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복지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입양 등 가정보호 우선의 보호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동보호서비스 업무매뉴얼에 보호조치 간 우선순위에 따른 업무처리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아동복지시설로 최초 보호조치 된 아동에 대한 가정보호로의 변경 보호조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변경 조치 대상 선정 기준과 변경 절차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하시기 바랍니다.

 
쉽게 풀어쓰면 보건복지부에 현재와 같은 시설보호 중심의 아동보호 체계를 가정 보호 중심으로 바꾸고 지금 시설에 사는 아이들 중 가정 보호 대상이 되는 아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가정 보호 조치 방안을 마련하라는 구체적 요구다.
 
포용적 복지국가는 현 정부의 국정 가치와 이념을 표상하는 복지구호다. 아쉬운 건 이 구호의 대상에 낳은 부모로부터 모든 권리가 포기된, 세상에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아이들은 국가로부터 포용 되지 못한 채 관심 밖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감사원에서 공인된 국가의 유기아동보호 실패 원인은 2021년인 지금 과연 근원적인 대책 마련에 성공했는가? 그래서 아이들은 가정 보호 우선 정책의 보호 체계를 거쳐 행복하고, 애정 있고, 이해하는 새로운 가정 안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가? 그러므로 유기아동보호에 대한 국가적 책무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지난 1월 한 달 동안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이들은 15명. 이들 중 다시 친생부모가 데려간 아이가 2명, 친생부모로부터 출생신고 후 친권 포기 과정을 거쳐 입양으로 새로운 부모를 만난 아이는 3명이다. 출생신고가 포기되고 양육도 친권도 포기된 나머지 10명의 아이는, 말하자면 국가로부터 출생신고 후 얼마든지 입양이 가능한 이 10명의 아이는 지금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살고 있다.
 
아직 국가는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을 포용하지 않았다.

 

출처 : 오마이뉴스

원문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30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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